AKAASHI KEIJI  X  KOZUME KENMA


W.  K A I N ( @ R o s e _ c h a i n s a w )

 

‌-대학생AU, 동거하고 있다는 설정입니다.


‌‌2017.10.16.
켄마의 생일을 축하하며...




    세계 척추의 날이 생일이라니 참 운명적이기도 하지. 웅웅대는 휴대폰 알람을 해지하면서, 아카아시 케이지는 맥없이 그런 생각에 미소 지었다. 아마 이보다 더 그 아이에게 잘 어울리는 날도 없을 것이다. 평소보다 더 이른 시각에 눈을 뜬 것은 오늘이 그에게도 퍽 중요한 하루였기 때문이다. 10월 16일. 창밖이 어슴푸레 밝아오는 새벽. 함께 살게 된 지 두 번째로 맞는 연인의 생일이었다. 작년과는 달리 올해는 평일이기 때문에 제대로 축하하려면 준비시간이 아무리 있어도 모자라다.


    “…아카아시?”
    “아. 미안, 좀 더 자.”


    그의 기척에 옆자리에 누운 연인이 몸을 꿈틀대고 있었다. 조심한다고 했는데도 깨워버린 게 미안해서, 아카아시는 잠긴 목소리로 속삭이며 그 이마에 입을 맞췄다. 으응…. 눈도 뜨지 못한 그 아이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 작은 동작에서 순식간에 행복감이 차오르는 느낌이 드는 건 오직 아카아시만의 전유물이다. 코즈메 켄마의 금발에선 항상 햇살 같은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아니, 온기라고 할까. 이를테면 햇빛에 잘 마른 세탁물에서 날 법한 그런 뽀송뽀송한 냄새다. 그게 아카아시에게는 적잖은 안락함과 평온함을 주었다. 고로, 그렇게 따끈따끈하고 사랑스러운 연인을 품에서 내려놓는 건 매우 힘든 일이었지만 더 지체할 시간이 없어 아카아시는 마음을 다잡고 일어섰다.


    “맛있는 거 해줄게, 좀 이따 내려와.”
    “뭐 해줄 건데……?”


    비밀이야, 라고 즉답해주자 이불을 혼자 독차지할 수 있게 된 코즈메가 손발을 바르작거리며 기지개를 폈다. 귀여워. 그 모습에서 어렵사리 눈길을 떼어내며 아카아시는 침실을 나왔다. 본인조차도 발길을 떼면서 하품이 나왔다. 아직 이른 시각이라 주방이 너무 어두워서 요리를 하려면 불을 켜야할 정도였다. 졸린 눈가를 문지르면서 그는 냉장고를 열고 어제 장봐온 재료들을 꺼냈다. 되도록 멋진 아침식사를 만들어줄 생각이었다. 뭘 만들어서 대접해야할지는 이미 여러 번의 고뇌를 거쳤다. 생일기념을 위해 되도록 화려하게, 색을 맞춘 음식을 준비하고 싶었다. 실상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코즈메 켄마를 상징하는 색이라면 역시 노란색과 붉은색이니까. 동거 후 몸에 밴 익숙한 동작으로 아카아시는 프라이팬을 달구기 시작했다.


    “오므라이스?”


    한창 야채를 볶고 있었을 즈음이었다. 고소한 기름냄새가 부엌을 가득 채웠을 무렵, 어느새 나타난 코즈메 켄마가 옆에서 불쑥 고개를 들이밀었다. 추운 모양인지 어깨에 담요를 두르고 있었다. 동그란 두상의 금발머리가 좌우로 갸웃거린다. 맞지? 새삼 관찰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아카아시는 엷게 웃었다. 어떻게 알았어? 어깨를 으쓱한 켄마가 이 정도야 쉽다는 듯이 말한다. 계란을 풀어놨길래. 아하. 어째 곧바로 납득이 가는 점이었다. 과연. 아카아시의 입매가 장난스러워졌다.


     “역시 네코마의 척추이자 뇌이자 심….”
     “그거 하지마!”


     빨개졌다. 빨개졌어. 삽시간에 돌변하는 얼굴빛에 아카아시가 낮은 목소리로 숨죽여 웃었다. 우리집 고양이 씨가 웬일로 아침부터 이렇게 건강할까. 당시로써는 뒷감당에 관한 건 생각도 안하고 던진 말이었다. 대학생이 되었는데도 고교시절과 한결같은 코즈메의 반응이 좋고 귀여워서, 틈만 나면 놀리고 싶었다. 그 덕분에 켄마가 잔뜩 골이 난 얼굴로 그의 머리카락을 한동안 잡아당기긴 했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입술만 잘근잘근 물며 프라이팬을 향해 고개를 돌려버렸다. 마침 요리순서 또한 하이라이트인 계란으로 넘어갈 즈음이라 그의 관심을 끌기 좋았기 때문이다.


    “이거 만들기 어렵지 않아?”
    “요령만 알면 괜찮아.”
    “실패하지마.”
    “…그렇게 말하면 꼭 실패할 것 같잖아.”


    그렇게 답하면서도 긴장한 기색 하나 없이 아카아시는 젓가락으로 프라이팬의 내용물을 휘휘 저었다. 훌륭한 손목 스냅으로 계란을 알맞게 말아 겉표면만 익히는 재주가 얼마나 신기해보였는지 켄마는 마치 마술트릭 같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이런 거 우리집에 살 때도 본 적 없는데, 대단해. 홀린 것 마냥 아카아시의 손에서 쭉 눈길을 떼지 못했다. 이윽고 프라이팬 안의 완성작이 유려한 흐름으로 접시 위에 담기기 시작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켄마는 눈만 동그랗게 뜬 채 포실포실해보이는 반숙계란으로 감싼 볶음밥을, 그리고 그 위에 데미글라스 소스 대신 케첩이 뿌려지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아니 더 정확히는 ‘그려졌다’는 표현이 맞을 듯 했다. 케첩통을 집어든 아카아시가 계란 위에다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럽게 글자를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뭘까 지켜봤더니 Happy Birthday라는 문구였다. …아, 이건 좀 너무해.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그는 괜스레 먹먹해진 가슴께를 붙잡아 쓸어내렸다. 너무 감동적이잖아, 아카아시 케이지.


    “이러니까 메이드 카페에서 내오는 음식 같지?”


    마침내 글자까지 완성하고 난 이가 흡족한 미소를 띠며 묻자 켄마는 애써 침착하게 그를 올려다보았다. 많이 감동받은 티를 겉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마음을 다잡아야했다.


    “아카아시, 그런 걸 어떻게 알아? 메이드 카페 가봤어?”


    그러자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싸늘하게 식은 듯한 목소리가 나와서 본인도 조금 놀랐다. …에?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평소보다 더 난감해하는 연인을 보니 좀 기분이 짜릿한 것도 없잖아 있었다. 아까의 복수랄까. 아카아시 케이지는 한낱 당황하는 모습조차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남자지만, 그런 사람을 조금이나마 동요하게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기분 좋았다. 미안한 감이 있기도 하지만 오늘만큼은 조금 더 당당하게 나가야지. 열심히 할 말을 고르는 듯하던 아카아시가 진땀을 빼는 동안, 코즈메 켄마는 그런 속셈으로 유유히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아니, 보통 이렇게 한다고들 하잖아.”
    “그러니까 어떻게 알아, 가봤어?”
    “…….”


    묘한 정적이 흘렀다. 곤란하기 그지없는 기색으로 쏟아지는 시선을 받아내던 아카아시는 이내 직감적으로 자신이 이 말싸움에서 결코 이길 수 없으리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눈을 질끈 감은 채 서둘러 이 자리를 피할 수 있을 대책을 찾았다.


    “생일선물가지고 올게, 먼저 먹고 있어.”


    황급히 사라지는 그 뒷모습을 본 켄마의 입가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너무 놀렸나. 살짝 미안하네. 그리고 느긋한 동작으로 휴대폰을 꺼내 아직까지 따끈한 오므라이스의 사진을 찍었다. 왠지 바로 먹기가 아쉬웠다. 아, 정말이지. 먹는 것도 안 먹는 것도 아까워지는 정성이었다. 설마 생일날 연인에게 이런 요리를 해주는 남자가 있을 줄이야. 아직까지 가슴이 뛰는 것 같았다. 하긴 이 남자는 작년에도 그랬다. 고전적 로맨티스트인 아카아시 때문에 켄마쪽은 매번 심장이 남아나질 않는다. 결국 마음에 드는 샷이 나올 때까지 버튼을 누른 후 마지못해 숟가락을 든 켄마는 조심조심 오므라이스의 계란을 찢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 단숨에 행복해졌다. 아카아시의 손요리란, 언제나처럼 의심할 바 없이 맛있다. 식감도 향도 거슬리는 구석 하나 없이 다 좋아서, 그 기세로 켄마는 두 숟갈을 더 입에 넣었다. 좀 주객전도 같지만 함께 살길 잘했단 생각도 들 정도였다.


    “맛있어?”


    눈 깜짝할 사이에 그릇이 비워졌을 무렵 방에서 돌아온 아카아시가 묻자 켄마는 지체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고마워.”
    “다행이네. 자 이건 선물.”


    그 말에 얼떨결에 접시에서 시선을 뗀 켄마는 아연실색하고 말았는데, 다름 아닌 아카아시가 식탁 위에 한가득 올려놓은 것들 때문에 눈이 핑핑 돌았기 때문이다. 그야 그럴 법도 했다. 온통 노랗고 까맣고 빨간 것들의 향연이었으니까. 피카츄 인형, 피카츄 모자, 피카츄 슬리퍼, 피카츄 잠옷…. 기가 막힌 탓에 켄마는 아주 여러 번 뜸들이며 힘겹게 입을 열 수 있었다.


    “…아카아시, 어째서 이렇게 피카츄에 집착하는 거야?”
    “너랑 잘 어울리거든.”


    마음 같아서는 곧바로 어디가? 라며 따지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었지만 그래봤자 결국 변하는 것은 없을 거란 생각에 켄마는 천천히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리고 얌전히 현실을 수긍했다. 그래봤자 조금 한숨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고마워.”


    마지못해 부루퉁한 얼굴로 피카츄 모자를 머리 위에 눌러쓰는 성의까지 보여줬으니 코즈메 켄마치고는 애썼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속으로는 포켓몬GO하는 모습을 들키지 말았어야했는지도 모른다고 자책하고 있었지만. 그 와중에 빤히 쳐다보는 눈초리까지 느껴지자 켄마는 어쩐지 부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자신을 향한 그 눈빛이 만족스러운 다정함으로 넘쳐나고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인 탓인지. 괜스레 뺨이 달아올랐다. 이런 거 어린애들한테나 잘 어울릴텐데. 얼굴을 감추려고 슬쩍 고개를 숙였는데도, 슬리퍼도 신어보라며 아카아시가 바닥에 무릎을 꿇는 바람에 도로아미타불이 되었다.


    “내가 신을 수 있는데.”
    “해주고 싶어서 그래. 그나저나 오늘은 뭐할까.”
    “…같이 포켓몬이라도 잡으러 가던가.”
    “하하, 그것도 좋겠네.”


    아무리 어린애 같은 투정도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다 받아주는 그 상냥함을 켄마는 좋아했다. 바닥에 몸을 꿇고 앉아서 직접 자신의 발에 피카츄 슬리퍼를 신겨주는 아카아시를 보면 볼수록 마음 속 어딘가가 간질간질해지는 느낌이었다.


    “…아니면 네가 선물해준 거 입고 피카츄 흉내라도 내줘?”


    아, 이제 뭐든 좋아. 몰려온 파도에 떠밀리듯 켄마는 끝내 인정하고 말았다. 그가 원한다면 이런 것도 얼마든지 입어줄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하자 목소리에서도 표독스러움이 절로 빠져나갔다. 너만 곁에 있어주면 돼. 속으로만 중얼거린 독백이었는데, 어째선지 아카아시가 눈치라도 챈 것처럼 조용히 미소 지으며 뺨을 부드럽게 쓸어왔다.


    “사랑해, 코즈메 켄마.”


    필요이상으로 섹시한 목소리였다. 사랑해. 그 목소리에 잠겨 켄마는 무척 포근포근한 기분이 되었다. 마치 아까의 그 오므라이스 같다. 아… 정말이지. 학교 가야하는데. 허나 지금만큼은 몸 안의 어떤 충동이 그런 현실적인 감각을 밀어내고 있어서, 켄마는 앉은 자리에서 허리를 숙여 그대로 아카아시에게 키스했다. 인생에서 이것보다 더 값진 생일선물이 있을 리 없다. 나긋나긋한 입술이 야릇하게 미소 지으며 속삭여왔다. 생일 축하해. 맞닿은 감촉이 너무 달콤해서 흠뻑 취해버릴 것 같았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