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마가 낮은 한숨을 내쉬곤 권총 손잡이를 고쳐 잡았다. 군데군데 껴 시야를 방해하는 밤안개에 그는 한껏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평소라면 한 번에 잡아냈을 인영을 오늘은 한참을 물색하고 있었다. 분명 이쪽으로 도주했을 터인데. 조금 더 나아가 볼까, 하며 고민하던 켄마는 결국 시선을 돌려 제 등 뒤에 바짝도 붙어 있는 소년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소년이 고개를 들자 여전히 공포심을 모르는 눈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 오로지 상대를 대적하고, 찾아내는 기이한 경계심만이 소년의 검은 앞머리 사이를 찢고 떠올랐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켄마는 흡족히 웃었다. 가르쳐 준 대로 잘하고 있구나, 카게야마.
켄마가 턱짓하자 소년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튀어나갔다. 모두가 숨 죽인 골목에서 조그만 벌레의 울음소리 같은 발걸음이 짧게 울렸다. 어느새 소년은 밤안개에 온통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소년이 사라져 텅 빈 모퉁이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켄마는 손바닥에 장전했던 권총을 내려뜨렸다. 이젠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내내 곤두세웠던 신경을 꺼트리고, 자주 깜빡이지 않았던 탓에 뻑뻑한 눈꺼풀을 내려감으며 벽에 어깨를 푹 눌렀다. 그러다가, 돌아갈 집에 식량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곁의 쓰레기통으로 조용히 향했다. 치우는 사람이 전혀 없었던 듯 둥그런 쓰레기통은 가득 넘쳐 있었다. 거리가 조금만 가까워지자 불쾌하고 역한 냄새가 켄마의 코를 찌르기 시작했지만, 그는 이 정도야 대수롭지 않았다. 본래 제 인생이 이토록 역한 것이었다. 익숙했다.
아직 형체가 심히 문드러지지 않은 음식물들을 골라 헐렁한 주머니 안에 쑤셔넣고 있을 때, 오른쪽 어딘가의 골목 안에서 한 발의 총탄 소리가 켄마의 귀를 때렸다. 빠르게 눈동자와 신경을 한데 모으고 소리가 난 쪽으로 기울이다가, 이내 무심한 숨을 내뱉곤 쓰레기통 주변을 마저 뒤적거리기 시작한다. 켄마는 고등어 통조림 캔 하나를 들어올린 뒤 손톱으로 몇 번 갉작였다. 상대편이 뒈졌거나, 카게야마가 뒈졌거나. 둘 중 하나겠지, 뭐.
설령 숨통이 끊긴 쪽이 카게야마라고 해도, 더 이상 내게 다가올 이질적인 기척은 느껴지지 않으니 이만 안심하고 돌아가기로 했다.
켄마가 다 스러진 한 오두막의 문을 열고 나름 저장고로 쓰이고 있는 궤짝 뚜껑을 들어올렸다. 켄마의 기억대로 역시나 궤짝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켄마는 뚱뚱한 바지 주머니 안에 손을 넣어 챙겨온 식량 (켄마와 카게야마는 그렇게 부르고 있다.) 을 그 안에 모두 쏟아냈다. 이걸로 일주일 가량은 굶주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가벼워진 몸에도 불구하고 맥이 빠진 걸음으로 쿠션을 향하는 켄마는 몹시 지쳐 있었다. 따져 보자면 오늘 제가 한 것은 상대와의 추격전 잠시, 총탄 몇 발의 발포가 다인데 말이다. 켄마는 자조했다. 존나 웃긴다. 센티넬이면 뭐 하냐고. 켄마는 더 이상 주변의 커다란 움직임과 기척들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느끼며 다 비져나온 쿠션의 솜 위에 풀썩 주저앉았다. 아까 전 골목에서의 오랜 대치로 능력치가 한계에 다다른 것이 뻔했다.
* * *
켄마는 꽤나 넓은 발을 가진 집단 조직의 보스의 아들로 태어난 센티넬이었다. 켄마의 아버지는 적대 조직들의 보스마저 함부로 건드릴 생각을 않는, 가히 최대치의 능력치를 부여받은 센티넬이었다. 그러함에 켄마가 세상 밖으로 나올 적, 수많은 칭송과 기대치가 붙는 것은 당연하고도 명백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켄마는 허약했다. 유전자의 조작 과정 중 과오가 벌어진 것일까, 뛰어난 센티넬인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도 그는 센티넬의 제 기능을 완벽히 해내지 못했다. '미완성' 이었다. 사람들은 켄마를 그렇게 불렀다. 또한, 쇳덩어리 하나를 자신의 완력으로 들지 못하던 켄마는 아버지의 경멸 어린 시선을 족족 받아내야 했다. 그것은 실로 미완성인 제 아들을 혐오하는 시선이 맞았다.
기어코 켄마가 버려진 것은 5살이 조금 넘었을 무렵에였다. 추적추적 내리는 기분 나쁜 빗방울을 맞으며 깨어나던 그 어릴 적의 순간을 켄마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가끔은, 아니 종종, 끔찍한 꿈결 속에서 그 생경한 풍경을 맞닥뜨리기도 했다. 모든 것이 그때부터였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부랑浮浪도, 다 썩은 음식물을 거리낌 없이 집어 먹을 수 있었던 것도, 살인을 습관적으로 저지르기 시작한 것도. 아, 내 인생이 이토록 역겹다는 생각이 낙인처럼 찍혀들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 코즈메 켄마는 오갈 데도 없고 쓸모는 더더욱 없는 떠돌이였다.
등짝 하나를 베기에도 버거워 보이는 쿠션 위에 누워 쪽잠에 빠져 있던 켄마가 깨어난 것은 문이 여닫히는 소리를 듣고서였다. 켄마가 엉망이 된 머리를 쓸어넘기며 몸을 일으켰다.
"으응……. 카게야마. 왔어? 안 죽었네."
"네. 밥은 드셨나요."
아까보다 조금은 수척해진 까만 소년, 켄마의 가이드, 카게야마였다. 그와 같은 공기를 들이마시자마자 켄마는 죽어 있던 신경들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카게야마의 물음에도 잠자코 무릎을 감싸안고 묵묵부답이던 켄마가 결국 킥,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순 음식물 쓰레기들 뿐인데, 뭐. 내 엿같은 인생에 존나 자연스럽게 동참하고 있는 너도 웃긴데, 나도 참, 얼마나 엿같은지 네가 뒈져도 딱히 상관없으면서 너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내가 더 웃겨.
카게야마는 좀처럼 웃지 않는 켄마가 홀로 키득거리는 모습을 처음 보는 양 둥그래진 눈으로 그를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까의 경계심과 대적이 가득하던 눈에서는 확실히 변색되어 있었다. 그리곤 이내 멋쩍은 입꼬리를 올려 따라 웃기 시작했다. 화창해야 할 봄날의 공기에 가득 낀 황사처럼 누리끼리한 조명 아래서 둘의 웃음소리가 뿌옇게 흩어지고 있었다.
"배고파요. 섹스는 밥 먹고 해요."
"왜, 토비오. 너도 내가 정상은 아닌 것 같아……?"
"으음. 네."
카게야마의 말이 이어졌다. 내일은 부디 좋은 컨디션으로 봬요. 켄마가 다시 한 번 입꼬리를 올려 샐쭉 웃었다. 카게야마가 물이 가득 담긴 양동이를 켄마에게 들이밀었다. 늦은 데에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제법 많이 구해왔네. 켄마는 뒤엉킨 머리를 손톱빗으로 서너 번 빗어내리고, 일어서서 음식물을 줍느라 더러워진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카게야마가 양동이 안에 손을 담가 적신 뒤, 켄마의 손을 부여잡고 천천히 문질렀다. 묻어 있던 찌꺼기들이 뒤늦게 씻겨 내려갔다. 두 손을 얌전히 맡긴 채 눈썹만 치뜨고 카게야마의 얼굴을 응시하던 켄마가 혀를 내밀어 입술을 축였다. 그의 손이 자신의 손과 더욱 깊이 맞닿고, 집요히 문질러질수록 흐린 의식과 막연히 드넓기만 하던 머릿속이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켄마가 카게야마를 만나고, 각인한 후로 가장 새로워 하던 부분이었다.
가장 적응하지 못하던 부분이기도 했다. 카게야마는 돌연 달려들어 제 입술을 씹어물고, 약물을 빨아들이듯 하는 켄마를 급히 안았다. 무엇이 그리도 불안한 건지 켄마는 자신이 센티넬이라는 사실을 인지할 때면 자제심을 곧잘 잃곤 했다. 켄마의 달뜬 입술과 카게야마의 부르튼 입술이 서로를 마구 탐했다. 절대로 섞이지 못할 것 같았지만 둘은 서로를 정신없이 물들였다. 둘의 턱과 입술에 붉음이 자욱했다.
켄마가 카게야마를 만난 것은 그가 떠돌이개 생활을 무려 이십 년 동안 이어왔을 무렵이었다. 다섯 살에 황량한 슬럼가로 내동댕이쳐져 어느덧 켄마의 나이가 스물다섯으로 막 발을 디딜 때즈음 켄마는 그제서야 제 안의 센티넬의 기운에 죄여지고 있었다. 폭주 위기까지는 오지 않았다. 하지만 종종 가슴과 배 안에서 불꽃이 타오르는 듯 괴로웠다. 켄마는 지금까지의 제 인생에 조금의 도움도 되지 않던 센티넬이라는 성향을 불청객 취급하고 있었다. 그때엔 조금 더 자주 꾸던, 악몽에 나오던 기억 속의 한 순간이 끝까지 제 꽁무니를 덮치는 듯해 매우 거슬렸다. 그러한 증상을 어떻게 다루고 진정시켜야 하는지, 센티넬의 곁에는 필수적으로 따라붙는 가이드의 존재마저 잘 몰랐던 켄마는 그저 냅다 집을 털고 사람을 죽이기 시작했다. 자신보다 조금 더 약한 사람들을 가슴에 머금은 불꽃과 같은 칼날로 난도질하고 나면 조금은 진정되는 것 같았다.
켄마의 손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피해를 입었다. 그때의 슬럼은 이어져 오던 질서가 엉망이 된 것처럼 어지러웠다. 거주하던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 골목에 기어코 살인마가 자리잡았다는 소문도 떠돌았지만, 이곳이 평소 경찰의 손이 완전히 닿지 않던 곳이라는 걸 깨닫고 모두 신고를 할 생각들은 않은 것 같았다. 켄마는 제 존재를 알리기라도 하듯 연쇄적인 살인을 지속했지만, 켄마의 존재는 오싹한 괴담 정도로만 남을 뿐이었다. 그런 그를 처음으로 먼저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지금과 똑같이 칠흑 같은 소년인 카게야마였다. 가만히 고개만 수그리고 걷고 있는데, 앞에서 빤한 시선이 느껴져 코트 안의 식칼을 쥐며 눈을 치뜨자 보인 소년이었다. 카게야마는 시선이 비로소 맞물리자마자 물었다.
"아저씨. 아저씨가 우리 아빠 죽였어요?"
"……."
"그랬냐구요."
"……아마?"
참으로 이상한 대화였다. 그렇잖아. 살인자와, 그 살인자에게 아빠가 죽임 당한 어린 소년의 만남이라니. 켄마는 그때를 지금 회상해도 입가를 찌푸리며 묘한 표정을 짓곤 했다. 그래서, 어쩔 건데. 무심히도 되묻는 켄마를 카게야마는 여전히 둥그런 눈빛으로 쳐다보다가 손을 내밀었다. 켄마가 한발 뒷걸음 했다. 그러자 카게야마가 모나지 않은 눈매를 접고 웃으며 말했다.
"잡아요. 그 새끼 죽여 줘서 고맙다고, 감사 선물 주러 온 건데. 아저씨 센티넬이잖아요."
저, 가이드거든요. 켄마는 가이드라는 단어의 의미를 몰랐지만, 그의 웃음에 주변의 모든 빛과 찬란이 제게 모여들고 있다는 사실은 알았다. 홀린 듯이 다가가 카게야마의 손을 잡자 켄마가 평생을 담고 있을 것만 같던 고통과 그를 까맣게 지지던 불꽃이 모두 사그라들었다. 아……. 켄마가 자그마한 탄성을 내질렀다.
* * *
카게야마는 뱀의 허물처럼 얇은 이불을 천천히 거둬냈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몸이 여즉 붉게 달아오른 채 조명 빛을 받았다. 그가 튀어나온 어깨뼈를 몇 번 주무르다 고개를 옆으로 틀자 켄마가 카게야마의 허리를 붙들고 깊은 숨결을 내뱉고 있었다. 간만의 수면에 푹 빠져버린 모양이었다. 카게야마가 참 변함없이 왜소한 그의 몸을 찬찬히 쓰다듬었다. 훌쩍 커버린 카게야마의 덩치와도 이젠 한눈에 알아볼 만한 차이가 나게 된 것 같았다. 카게야마가 걱정스레 미간을 구기고 중얼거렸다. 큰일이네. 이제 조금만 있으면 밖이 소란스러워질 텐데…….
카게야마의 걱정대로 켄마는 문득 소란스러운 바깥 소리에 눈을 떴다. 이 부근이 소란스러울 리가 없을 텐데. 일단 눈꺼풀을 들어올리고서도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잠에 풀린 눈을 정확히 다섯 번을 세게 감았다가 떴다. 비로소 선명히 형체를 잡는 시야에는 어느새 옷을 모두 차려입고서 창가 앞에 서 있는 카게야마가 가장 먼저 걸린다. 켄마도 옆으로 뻗은 팔을 더듬거려 거적데기처럼 흐물하게 손가락에 걸리는 티셔츠를 하나 집어 머리에 끼웠다. 팔을 마저 끼워 넣기 위해 상체를 들어올리자, 켄마의 기척을 느낀 듯 카게야마가 뒤를 돌았다. 몸의 절반이 옷 안으로 밀어넣어진 채 켄마가 물었다.
"카게야마……. 무슨 일이야? 밖이 시끄러워."
켄마의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에도 아랑곳 않은 채 카게야마가 답했다.
"죄송해요. 켄마 씨. 실은 오면서 경찰에게 쫓겼었어요."
"응……?"
"어제요. 오면서 경찰한테 쫓겼었다고요. ……켄마 씨. 켄마 씬 여기 계세요."
"……."
"제가 나가서 어떻게든 해 볼 테니까, 켄마 씨는 여기 숨 죽여 계세요. 데리러 올게요."
그리고……. 혹시, 제가 못 들어올 것 같으면, 먼저 저 창문으로 도망치세요. 아셨죠. 카게야마가 말끝을 흐리는가 싶더니 뒷말을 도로 명확하게 이었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거짓말 같이 켄마의 귓속을 찢었다. 켄마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고개를 떨구는 켄마를 본 카게야마가 말했다. 상황 정리 같은 거 할 시간 없어요. 제 말 들으세요. 그런 뒤, 바닥에 구르던 권총 하나를 집어 손바닥이 하얘질 만큼 힘 주어 쥐었다. 카게야마가 곧장이라도 박차고 튀어나갈 것 같이 문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머리를 치든 켄마가 급히 그의 이름을 외쳤다. 찢어지는 소리로 내뱉은 그 이름이 카게야마의 걸음을 붙잡았다. 둘 사이에서 곧 끊어질 것만 같은 위태로운 형세의 끈이 문득 힘 있게 조여왔다. 카게야마!
턱끝을 돌려 눈, 코, 입술의 딱 절반 만큼을 내보인 카게야마가 입을 들어올렸다. 아무래도 웃는 모양새였다. 단단한 목소리가 켄마에게로 돌아온다. 걱정 마세요. 저, 켄마 씨 가이드잖아요. 그 음성이 마치 처음 만났을 때의 앳된 목소리와 진득히 겹쳐선 켄마의 귓바퀴를 쿡 찔러댔다. 타닥. 카게야마는 말릴 새도 없이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켄마가 괴로운 듯 제 바짓단을 구겨질 정도로 움켰다.
……. 하아, 훅… 켄마의 거친 숨소리가 바깥에서 연신 이어지는 총 소리에 묻혀 아득히 사라졌다. 탕, 타앙, 탕…….
탕! 켄마가 돌연 양손으로 귀를 감싸며 몸을 발작했다. 단말마의 비명 같은 마지막 총탄 소리를 끝으로 밖의 소란은 잠잠해진다. 켄마는 유독 끔찍하던 그 총 소리를 되새기며 눈꺼풀을 잔뜩 구겨뜨렸다. 참던 숨을 한꺼번에 터뜨리는 듯한 거친 호흡 소리와 함께 켄마가 중얼거렸다. 오두막집 안이 지독히 가라앉았다.
카게야마, 죽었어……?
켄마는 귓바퀴가 터질세라 손바닥을 더욱 오므렸다. 낡은 나무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다시 열릴 때를 기다리면서.